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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살이/불현듯

대의명분(大義名分)

by 수줍은 공돌이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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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게는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10분 일찍 눈을 떠 이불을 걷고 일어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5분 늦게 현관을 나설 때는 

좀 더 나를 챙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내게는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검은색 양말을 꺼내 신고, 

내의도 검은색으로 깔맞춤을 할 때는 

오늘 내게 어울리는 색이 검은색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게는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건물 4층 사무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계단을 오른데는

엘리베이터가 막 6층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나는 

날짜를 택합니다. 그리고 명분을 찾습니다. 

그날은 내게 쉼이 필요한 날이 분명할 것입니다. 

 

오늘 저녁 나는 

삼선볶음밥을 먹습니다. 이과두주도 하나 시켰습니다. 

혼자 먹기 적당한 양이라는 명분을 달아 줍니다. 

중국집에 간 것은 이과두주를 먹기 위함이었나 봅니다. 

배가 고팠던 건 중국집에 가기 위함이고, 

마침내 발걸음이 거기서 멈춰졌기 때문입니다. 

이과두주를 마시기엔 삼선짬뽕이 나았을 수 있다는

올바르지 않은 생각은 바로 던져 버립니다. 

 

나는 내일도 명분을 찾을 것입니다. 

뭘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냥 하고 싶었던 거라고 

그냥 지금 맘이 내켰던 거라고 

어쩌다 보니 시간이 걸린 것이고 

한 번쯤은 계단을 오르고 싶었던 거라고 

 

이유를 찾기가 어려울 때는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면 될 것을

 

그는, 20여 년의 글쟁이였음이 부끄러웠는지 

삼선볶음밥만큼이나 어쭙잖은 명분을 달고

명분인지 변명인지 구분을 짓지 못하며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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